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 대학 등록금마저 혼자 힘으로 벌어내야 했던 젊은 날의 서러움이 가슴 한구석에 오랜 응어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앞길만큼은 결코 차별의 그늘에 주눅 들지 않도록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지난 아픔을 씻어내는 참된 치유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맥락 속 김지영의 일상과 서늘한 대물림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뒤돌아보다 보면 유독 찬 바람이 휑하니 부는 것처럼 시리게 걸리는 시절이 있습니다. 남들은 꽃다운 청춘이라 부르는 그 파릇파릇하던 학창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의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욕심껏 배워서 세상 밖으로 당차게 나가보고 싶다는 꿈이 참 컸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집안 어른들의 눈길과 기대는 늘 오빠 차지였습니다. 장남이자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빠는 온 집안의 든든한 뒷배를 받으며 대학 등록금도 걱정 없이 다녔지만, 똑같이 태어난 딸자식인 저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그래도 배움에 목이 말라 공부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편하게 학교 다닐 형편이 못 되니 학기마다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았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며 악착같이 등록금을 벌어 채워 넣었습니다. 친구들이 방학이라고 배낭 메고 놀러 다니며 앞날을 준비할 때, 저는 남들 다 쉬는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뛰어다니며, 한 푼 두 푼 악착같이 모아 학비와 책값을 대느라 홀로 젊은 날을 버텨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목구멍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기가 막히게도 그때는 왜 그 서글픈 차별을 당연한 내 팔자려니 받아들였는지 모릅니다. 딸로 태어났다는 게 죄도 아닌데, 서러운 소리 한마디 못 꺼낸 채 그저 속으로 삭이고 버티는 것만이 착한 딸의 몫인 줄 알았던 참 먹먹하고 바보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안을 위해 내 몫을 덜어내고 참아내는 게 마땅한 희생이라 여겼건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그저 혼자서 눈물 삼키며 견뎌낸 생채기투성이의 청춘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차별이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만큼 세상 공기는 차가웠고, 내 이름 석 자는 늘 가족들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남몰래 베갯잇을 적시며 보낸 밤들이 모여, 가슴속 깊은 곳에 쉬이 지워지지 않는 멍 자국을 남겨놓았습니다.
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생애주기별 성차별 경험 조사에 따르면, 과거 세대 여성의 68% 이상이 진학과 자원 배분에서 명백한 불평등을 겪었으며 이를 사회적 관습으로 체념해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학창 시절 성차별 경험의 눈물과 서글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목구멍에 마른침이 턱 걸리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남동생 밥그릇엔 귀한 고기반찬이며 보약이 먼저 올라가고, 계집아이라는 이유로 해거름만 넘겨 들어와도 불호령이 떨어지던 김지영의 집안 풍경이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딸자식으로 태어난 수많은 어머니와 언니들이 방구석에서 남몰래 눈물 훔치며 속으로 삼켜야 했던 서러움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습니다. 시집가서 아이 낳고 젖먹이 씨름하느라 내 이름 석 자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끝내 속병이 도져 헛소리까지 쏟아내던 지영이를 보는데 꼭 젊은 날 넋이 나간 채 젖병을 물리던 내 모습 같아 가슴이 미어지고 시큰했습니다.
그때는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여자가 입 닫고 곰살맞게 참아야 집안이 조용하다'라고 하니, 그게 정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오빠 뒷바라지에 내 배움의 길은 뒷전으로 밀려도, '집안 기둥이 살아야 온 식구가 편하다'는 부모님 말씀에 억울하다는 투정 한 번 못 부리고 속으로 삭여야만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 효도랍시고, 착한 딸의 도리랍시고 묵묵히 짊어졌던 희생이 실상은 딸이라는 이유로 씌워진 모진 굴레였다는 생각에 뒤늦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바보처럼 참아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가슴 한구석에 돌덩이처럼 얹혀 있던 오랜 서러움을 그제야 가만히 쓸어내리며, 등록금 고지서를 꼭 쥐고 남몰래 눈물 훔치던 스무 살의 가여운 내 청춘을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의 내가 비로소 따뜻하게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출처: 여성가족부의 가족 내 성별 자원 배분 분석에 따르면, 성별화된 교육 기회 격차를 경험한 여성일수록 성인기 이후 자아 성취감과 주체적 결정권 지수가 남성 대비 35% 이상 낮게 유지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피해의식을 넘어 세대 공감과 연대로 피우는 회복
책장을 덮으며 홀로 대학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찬 바람 부는 거리를 종종걸음 치던 스무 살 무렵의 내 가여운 뒷모습을 가만히 보듬어주었습니다. 지나간 시절의 서러움을 이제라도 똑똑히 마주하게 된 것은, 지난날의 부모님을 탓하며 속을 썩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가 겪었던 그 모진 차별의 대물림을 내 대에서 기필코 끊어내고,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딸이라는 이유로 기가 꺾이거나 꿈을 접는 아픔을 결코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아픔은 우리 대에서 끝나야 하며, 자식 뒷바라지만을 강요받지 않고 제 일터에서 당당하게 제 이름을 빛내며 살아갈 온전한 권리가 마땅히 지켜져야 합니다.
다만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 못내 마음에 걸렸던 대목도 있습니다. 그 시절의 팍팍한 삶과 시대의 굴레를 조금은 너그럽게 헤아리지 못한 채, 남녀 사이의 갈등을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편을 갈라 몰아세운 점은 짙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바깥에서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휘도록 짐을 짊어져야 했던 아버지와 남편, 아들들의 고단한 청춘마저 그저 차별의 주범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너무도 무겁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딸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여야 했던 지난날의 낡은 그림자를 툭툭 털어내고, 내 몫의 삶을 당당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려 합니다. 딸아이의 손을 꼭 쥐어주며 '너는 날개를 활짝 펴고 네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당당하게 가거라' 하고 말해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한평생 밖에서 애써온 신랑의 거친 손을 잡아주고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식구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밥상머리에서부터 지난 시절의 눈물겨운 상처도 비로소 아물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무엇이었나요?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직장 등 일상 깊숙이 뿌리 박힌 제도적·문화적 성차별을 통계 자료와 함께 사실적으로 고발하여 여성들의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Q. 과거 세대의 차별 경험을 마주할 때 자책감이나 원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 시대의 한계였음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묵묵히 버텨온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내 딸과 아들에게는 공평하고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지지자로 서는 것입니다.
Q. 책을 읽은 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가족 소통 태도는 무엇일까요?
성별에 따른 고정된 역할 분담을 내려놓고, 집안일과 돌봄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며 서로의 사회적 자아를 존중해 주는 수평적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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