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거리는 무릎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휘청이는 몸을 보며 문득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김훈의 「허송세월」을 읽으며 삐걱대는 몸도 삶의 자연스러운 풍경임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무던한 마음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느려진 내 걸음걸이를 사랑하려 합니다.

무너지는 육신의 신호와 버스 손잡이의 서글픈 자각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큰거리는 무릎 때문에 발걸음이 절로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었을 적엔 두세 칸씩도 가볍게 뛰어오르던 계단인데, 이제는 난간을 꼭 붙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모습이 영락없이 가파른 고갯길을 넘는 듯합니다. 장 보러 다니는 시장보다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의 냄새가 더 익숙해지는 내 처지를 마주할 때면 말로 다 못 할 서글픔이 불쑥 솟아납니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쳐야만 겨우 눈에 들어오는 책 속의 작은 글씨들과, 아침에 눈떴을 때 뻣뻣하게 굳어 주먹 쥐기조차 버거운 손마디는 내 몸도 이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낡아가는 중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손발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밥을 먹다가도 나도 모르게 반찬을 툭툭 흘리는 일이 잦아지고, 덜컹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꼭 쥐고 서 있어도 몸이 뚝뚝 휘청이는 제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왜 저 어르신들은 중심을 못 잡고 옆 사람에게 몸을 기대실까 무심하게 바라보았는데, 바로 그 위태로운 모습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온전히 내 모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이 든다는 건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와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게 만드는구나 싶어, 멍하니 창밖을 보며 절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탱탱하던 기운은 간데없고, 사소한 몸짓 하나를 할 때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헛헛해집니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노라면, 흐르는 세월 앞에서 사람이 참 별수 없다고 하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채웁니다. 그 옛날 버스 안에서 휘청거리던 어르신들의 굽은 등 뒤에 어떤 고단한 세월이 얹혀 있었는지, 이제야 비로소 내 몸으로 깊이 알아가는 중입니다.
출처: 한국 노년학회의 중장년 신체 노화 지각 및 정서적 위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평형감각 저하와 관절 통증을 처음 자각한 50대의 69%가 급격한 자기 통제감 상실과 노화 불안을 경험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김훈의 메마른 연필과 낡아가는 육신을 견디는 문장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써온 김훈 작가는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일흔을 훌쩍 넘긴 자신의 헐거워진 몸과 메말라가는 일상을 참으로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을 오가고, 틀니를 낀 채 잇몸으로 음식을 우물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동네 산책길에서도 자주 멈춰 서야 하는 자신의 노쇠한 모습을 어떤 꾸밈도 없이 그대로 써 내려갑니다. 그는 나이 듦을 두고 인생의 원숙한 완성이라거나 지혜로운 결실이라며 듣기 좋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건 그저 살이 빠지고 뼈마디가 삐걱거리며, 몸 안의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쇠약해진 몸 때문에 혼자 속앓이를 하던 제 마음에 뜻밖의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돋보기를 챙겨 쓰고 밥을 먹다 반찬을 흘리는 일이 내가 잘못 살아서 생긴 부끄러운 흠이 아니라, 세월을 통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굳어가는 손가락 사이에 몽당연필을 쥐고 원고지를 채우며, 몸은 낡아가더라도 살아 숨 쉬는 한 오늘 하루의 끼니와 글쓰기를 묵묵히 해냅니다. 몸이 삐걱거린다고 한탄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 무던한 태도를 보며, 혼자 전전긍긍하던 제 속 좁은 두려움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 몸이 약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생의 다음 계절로 건너가는 지극히 정직한 순서입니다. 덜컹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꼭 쥐고 흔들리는 내 모습 역시, 그 오랜 세월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꾸려오느라 묵묵히 버텨온 내 몸의 솔직한 흔적이었습니다. 작가의 담백한 고백을 마주하며, 이제는 삐걱거리고 나약해진 내 몸을 서운해하지 않고, 가만히 보듬어줄 용기를 얻었습니다.
출처: 서울대학교 노화 고령사회 연구소의 노년기 신체 수용도 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퇴행을 회피하지 않고 생물학적 실재로 담담히 인정한 노년층은 신체 불만족 군보다 우울 지수가 43% 낮고 일상 수행 능력이 높았습니다.
단정한 허송세월의 품격과 건조한 체념에 대한 성찰
저자가 말한 '허송세월'의 참뜻을 가만히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나태함이 아니었습니다.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려는 욕심이나 세상의 요란한 기준들을 털어내고, 내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내 속도대로 살아내는 담백한 비움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몸의 아픔과 쇠락을 그저 메마르고 쓸쓸한 육체의 붕괴로만 바라보는 저자의 지나치게 건조한 시선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록 몸은 낡아가더라도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오가는 다정한 눈빛과 서로를 보듬는 끈끈한 마음의 가치까지 함께 담아냈더라면 글이 한결 더 깊은 울림을 주어 좋았을 것입니다.
정형외과 물리치료실 침대에 누워 따스한 찜질팩을 대고 누워 있는 시간도, 돋보기를 고쳐 쓰며 책장을 찬찬히 넘기는 고요한 오후도 결코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이 아닙니다. 둔해진 손마디로 식구들을 위해 정성껏 찌개를 끓이고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내는 매일의 손길이야말로, 내 삶을 흔들림 없이 지탱해 주는 진짜 힘입니다.
이제는 버스 안에서 몸이 기우뚱거리더라도 얼굴 붉히며 위축되지 않으려 합니다. 젊은 시절의 팽팽한 기운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지난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며 깊어진 넉넉한 마음과 남을 헤아리는 눈길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손마디는 무겁고 무릎은 시큰거릴지라도,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의 볕을 감사히 누리며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 삶은 세상의 그 어떤 거창한 성공보다 훨씬 더 값지고 편안한 평온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작가 김훈이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늙음과 신체의 퇴행을 거창한 수사나 위안으로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마주하며, 허망한 시간 속에서도 일상의 작은 몫을 묵묵히 감당해 내는 태도의 중요성입니다.
Q. 신체 능력이 떨어져 일상에서 자괴감이 들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과거의 민첩했던 상태와 끊임없이 비교하지 말고, 노화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자연스러운 순환임을 인정하며 매일 걷기 운동 등 관리 가능한 습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나이 듦이 주는 긍정적인 가치나 내면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헛된 인정욕구와 과도한 조바심에서 벗어나, 나와 타인의 연약함을 너그럽게 품어줄 수 있는 깊고 단단한 포용력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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