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란 남들의 칭찬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오랜 헌신 뒤에 찾아온 공허함을 털어내고 나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줄 때 비로소 진정한 생의 온기가 피어남을 온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 속에 지워진 나라는 존재의 회복
꽃다운 젊은 날에는 저 역시 가슴 벅찬 꿈이 있었고, 내 손마디로 세상에 번듯한 내 몫 하나쯤은 다부지게 일궈내겠다는 당찬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식구를 이루고 아이들을 품에 안아 기르며 매달 돌아오는 생활비 걱정과 쪼들리는 살림살이를 악착같이 버텨내는 사이, 곱디곱던 제 이름 석 자는 바람결에 흩어지듯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편 밥상 챙기랴, 커가는 자식들 발걸음에 내 하루를 꽁꽁 묶어두고 살아가느라,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늘 고단함에 짓눌린 '누군가의 그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품 안의 자식들이 훌쩍 자라 제 갈 길을 찾아 하나둘 둥지를 떠나갈 채비를 할 때, 문득 휑뎅그렁한 방 안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보며 이토록 숨 가쁘게 내달려왔던가" 싶은 헛헛함이 휑한 가슴속을 시리게 짓눌러왔습니다.
마음 다스리는 길을 짚어주는 윤홍균 저자의 책 『자존감 수업』을 찬찬히 넘기다 보니,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갉아 먹던 이 서글픈 공허함의 밑동을 어쩌면 그리도 족집게처럼 짚어내는지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는
남들이 쳐주는 손뼉이나 그럴싸한 세상 형편에 휘둘리는 것은 진짜 내 힘이 아니며, 못나고 흠집투성이인 나 자신이라도 두 팔 벌려 가만히 품어 안아줄 수 있는 속마음의 줏대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삶의 뿌리라고 나직이 들려줍니다.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제 온몸과 넋을 모조리 갈아 넣으면서도 정작 제 속병은 모른 척 덮어두었던 이들은, 헌신의 끈이 느슨해지거나 아이들이 둥지를 훌쩍 벗어나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진 낭패를 겪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며 제 메마른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나 역시 '속 깊은 아내', '자식밖에 모르는 알뜰한 어미'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 뒤에 웅크린 채, 상처투성이가 된 내 여린 속살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시린 가슴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한국심리치료학회의 중장년층 자아존중감 종단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의존적 역할 부여가 강했던 개인일수록 생애 전환기에서 우울감과 자기 비하를 경험할 확률이 48% 이상 높은 반면, 독립적인 내적 가치를 분리해 재발견한 집단은 심리적 안정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온전한 수용이 자존감 회복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는 결단과 심리 만능주의 경계
친구들이 좋은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터를 잡고 여가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남부럽잖게 잘 풀린 집안 소식을 건너 들을 때마다 제 가슴 밑바닥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못난 마음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대체 무얼 하느라 이 모양 이 꼴로 주저앉았을까", "내 손아귀에 쥔 몫은 어쩌자고 이리도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나" 하며 애꿎은 제 등짝만 모질게 후려치고 깎아내리기에 바빴습니다. 윤홍균 저자의 무릎을 치게 짚어내듯, 남들이 번쩍거리게 꾸며놓은 남의 집 잔칫상과 내 집구석의 어수선한 뒤안길을 맞바꾸는 기막히게 어리석은 장삿속이었습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피땀으로 버텨온 내 소중한 일상을 제 손으로 헐뜯는 버릇이야말로 속을 문드러지게 갉아먹는 가장 고약한 몹쓸 짓이었습니다.
책 『자존감 수업』에서 일러주는 다독임들은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면서도 손에 잡힐 듯 살갑지만, 세상만사의 모든 생채기를 오직 제 마음먹기 하나로 뚝딱 고쳐낼 수 있다는 식의 지나친 생각 앞에서는 가만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사람이 제 발로 꿋꿋하게 서는 힘이란, 당장 목을 죄어오는 가혹한 돈고개나 세상의 불공평한 턱, 그리고 뼈저린 현실의 고꾸라짐과 결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감당 못 할 빚더미에 짓눌려 숨이 턱턱 막히거나 살붙이의 몹쓸 병환 앞에 무릎이 꺾여 있는 사람에게, "그저 마음만 다잡아먹으면 속이 절로 든든해진다"는 식의 말은 자칫 뜬구름 잡는 속 편한 소리나 헛헛한 입치레에 그칠 수 있습니다. 쓰린 속을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다독임과 더불어, 내 발밑을 어지럽히는 거친 자갈밭을 내 손으로 한 뼘씩 치워나가는 야무진 실천이 반드시 어깨동무하듯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출처: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의 성인 정신건강 실태 분석에 따르면, 주관적인 자존감 형성 요인 중 40% 이상은 경제적 안전망과 사회적 지지 체계 등 외적 환경의 안정성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단순한 심리적 자기 암시를 넘어 일상의 현실적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실천이 동반될 때 자존감이 온전히 유지됨을 실증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성숙하고 다정한 온기
세상의 큰 성공이나 번쩍거리는 갈채를 모조리 독차지해야만 손에 쥐어지는 화려한 트로피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글자글 세월이 내려앉은 눈가의 주름과 헛발질하며 실수투성이로 보낸 하루의 끝자락에서도 "참 애썼다, 오늘 하루도 참 용썼다" 하며 제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자리에서 비로소 싹을 틔웁니다. 빈틈없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맥없이 흔들리며 흙바닥에 무릎을 깨뜨려도 그마저 다 내 귀한 인생의 한 자락임을 순순히 품어 안을 때 비로소 마음의 든든한 주춧돌도 단단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이제는 남들의 눈치나 귓속말 한마디에 가슴을 졸이며 일희일비하던 그 조급한 마음보를 미련 없이 내려놓으려 합니다. 오늘 내게 허락된 손바닥만 한 시간들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을 대접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알뜰하게 채워가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 온기를 가만히 넘겨보며, 서늘한 책상머리에 홀로 앉아 지나온 세월의 무늬를 담아 정갈한 글 한 줄을 엮어내는 이 호젓한 새벽이 더없이 눈물겹고 고맙습니다. 식구들 입에 밥 한술 더 넣어주느라 아낌없이 퍼주었던 그 살뜰한 온기를, 이제는 모진 비바람에 시달려온 내 여린 속마음에도 듬뿍 나누어주며, 남은 날들을 남의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하고 어엿한 내 삶으로 곱게 빚어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휑뎅그렁한 방 안에서 지나온 세월의 헛헛함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거나, 남들의 번듯한 삶자리와 견주며 내 빈손을 한탄하는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굳은살 박인 내 거친 손등을 살며시 쓸어안아 주었으면 합니다. 모진 세상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여기까지 묵묵히 걸어온 당신의 굵어진 발걸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눈물겹도록 어엿하고 눈부신 훈장입니다. 못난 나 자신을 먼저 품에 보듬어 안는 그 손톱만 한 온기에서부터, 세상 그 어떤 거센 바람도 감히 흔들지 못할 가장 야무지고 참다운 삶의 새날이 기어이 활짝 열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존감과 자존심은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요?
자존심은 남들과의 비교나 경쟁에서 이겨 우월감을 느끼려는 마음인 반면,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내면의 힘을 뜻합니다.
Q. 가족에게 평생 헌신해 온 중장년층이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작은 취미나 글쓰기 등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매일 30분씩 확보하는 것입니다.
Q. 나쁜 감정이 불쑥 솟구쳐 스스로가 미워질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심호흡과 가벼운 산책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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