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비위를 맞추려 광대처럼 웃는 얼굴 뒤로 남몰래 고독과 불안을 삼키며 살아온 날들이 참 많았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으며 세상의 가면에 짓눌려 자신을 파괴해 간 주인공의 파멸을 통해 인간 실존의 서글픈 맨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며, 온전한 나로 살아갈 힘이 생겨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면 뒤에 숨겨둔 두려움과 파멸로 치닫는 광대의 비극
돌아보면 험난한 세상살이 속에서 저 역시 남들에게 모난 돌 취급을 받거나 뒤처질지 두려워, 손발이 부르트도록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습니다. 시댁 어른들의 눈치나 동네 이웃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려 속마음에도 없는 헛웃음을 연신 흘렸고, 가슴속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응어리와 슬픔이 켜켜이 쌓여가는데도 입꼬리만 억지로 바짝 끌어올린 채 아무 탈 없는 척 속 편한 낯빛을 지어 보이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명절날 온종일 기름 냄새를 뒤집어쓰고 전을 부치며 시누이들의 뼈 있는 농담에도 그저 바보처럼 실실 웃어넘기거나, 곗돈 모임에 나가 속으로는 학원비와 쪼들리는 생활비 걱정에 피가 마르면서도 겉으로는 "우리 집은 다 괜찮다"라며 허허로운 맞장구를 치고 돌아오던 어스름한 골목길이 떠오릅니다. 대문을 열고 휑뎅그렁한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의 온기 뒤로 뼛속까지 시린 헛헛함과 피로감이 물밀듯 밀려와, 벗어둔 겉옷도 개키지 못한 채 신발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남몰래 가슴을 쥐어뜯곤 했습니다. 내 속엣말과 쓰린 눈물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내비쳤다가는 '속 좁은 사람', '살림 하나 똑소리 나게 못 꾸리는 못난 여자'로 손가락질받을까 겁이 나, 숨 막히는 광대탈을 얼굴에 찰떡처럼 붙여둔 채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던 것입니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 속 주인공 요조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 가슴 저미는 위선의 덫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요조는 핏덩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번지르르한 거짓과 속내를 꿰뚫어 보며 오금을 못 펼 만큼 깊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에게 내쳐지지 않으려고 짐짓 바보짓을 자처하며 우스꽝스러운 익살꾼 흉내를 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 진짜 속살을 꼭꼭 숨긴 채 남 비위나 맞추며 광대 노릇을 하던 삶은, 결국 제 영혼을 시커멓게 좀먹는 맹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끝끝내 독한 술과 약에 찌들어 제 몸뚱이를 망가뜨리며 "나는 이제 사람 구실도 못 하는 자격 미달"이라며 바닥 모를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남의 비위와 세상 눈치를 살피느라 내 가슴속 여린 숨구멍을 제 손으로 틀어막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겹쳐 보여 목구멍이 컥 막혀왔습니다.
출처: 도쿄대학교 현대문학 심리연구소의 자기 파괴적 페르소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인정 욕구와 거절 불안으로 인해 본래의 자아를 은폐하고 극단적인 순응적 가면을 지속해 착용한 개인의 72% 이상이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자기혐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이 내면의 온전한 생명력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소가 됨을 객관적으로 입증합니다.
인정 욕구의 허상과 극단적 자기 연민의 덫에 대한 경계
요조의 그 뼈마디 시린 방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제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던 '착한 사람 흉내'의 고약한 실체를 정통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살림을 꾸리고 이웃과 어울리다 보면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참 싹싹하고 성품 곱다"라는 남들의 입에 발린 칭찬 몇 마디를 듣겠다고 제 속 창자가 다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억지 춘향 노릇을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아파트 동대표 일이나 반상회 잡무를 도맡아 하면서도 남들 싫어하는 궂은일은 죄다 떠안고, 정작 무리한 부탁을 받아도 매몰차게 거절 한 번 못 해 끙끙 앓던 날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겉으로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배시시 웃어넘겨 놓고는, 밤이 되어 설거지통 앞에 서면 억울함과 분통이 치밀어 올라 애꿎은 그릇만 달그락거리며 혼자 가슴을 쥐어뜯곤 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흠 없는 사람으로 비치겠다는 그 욕심보가, 실은 내 숨통을 죄는 올가미였다는 사실을 요조의 비참한 뒷모습을 보며 등골 서늘하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저미는 절망을 곱씹다 보면, 마음 한편에서 매서운 경계심이 고개를 바짝 쳐들게 됩니다. 요조는 세상의 얄팍한 겉치레를 기막히게 꿰뚫어 보면서도, 그 험한 세상 앞에서 제 두 발로 땅을 딛고 버텨보겠다는 매운 용기는 단 한 줌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상이 나처럼 순진한 사람을 망가뜨렸다"라며 무기력한 피해자 흉내를 내고, 술과 주정에 취해 주변 사람들의 피를 말리며 제 삶을 시궁창에 내던져버린 것입니다. 내 상처가 깊다고 해서 식구들의 밥상을 팽개치고 살림을 내동댕이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처받았다는 핑계 뒤에 숨어 제 몫의 삶을 팽개치고 남 탓이나 웅얼거리는 것은, 살아갈 염치마저 저버리는 비겁한 응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 실존주의 철학연구소의 자아 분열 분석에 따르면,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 현실적 대응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수동적 피해의식에 안주한 집단은 우울 극복 지수가 통제군 대비 40% 이상 낮게 측정되었습니다. 비극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 위에 스스로의 현실을 책임지려는 결단이 동반되어야만 건강한 실존적 주체로 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툰 결핍을 긍정하며 되찾는 삶의 존엄과 용기
책장을 덮고 어둑한 방 안에서 긴 숨을 가만히 내쉬는 사이, 지나온 세월의 굽이진 자국들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묵직한 위로가 되어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소설의 맨 끝자락에서 한 술집 마담은 험한 세상에 치여 허물어진 요조를 떠올리며 "우리가 알던 요조는 참 순진하고 눈치 빠르고, 하느님처럼 착한 아이였어요"라고 나직하게 읊조립니다. 그 글귀를 눈으로 짚어 내려가는데 콧날이 찡해지며 목구멍이 턱 메어왔습니다. 돈을 굴리고 번듯한 감투를 쓰는 세상의 잣대로 보면 손가락질받을 낙오자였을지 몰라도, 그 여린 가슴속에는 남의 마음에 생채기 하나 내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애틋하고 순한 결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네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 사는 으리으리한 모양새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살림을 꾸리다 덜컥 헛발질하고 무릎이 까졌다고 해서, 피땀 흘려 식구들 건사하며 살아온 내 인생의 알맹이마저 모조리 헛것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세상을 씩씩하게 건너가는 진짜 배짱은 남들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빈틈없는 척 연기를 해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내 안의 소심한 두려움과 못난 흠집, 덤벙대며 실수투성이로 보낸 하루마저도 "그래, 이것도 다 내가 겪어내는 내 삶이지" 하며 품에 넉넉하게 보듬어 안을 줄 아는 너그러움에서 싹트는 법입니다.
남들이 뒤에서 수군댈까 봐 가슴 졸이며 눈치나 살피던 숨 막히는 탈을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오늘 내 손마디로 감당할 수 있는 투박한 살림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하루야말로 세상 그 어떤 비바람도 흔들지 못할 든든한 바람막이입니다.
창가에 서려 있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감싸 쥐고, 모니터 불빛 아래 앉아 내 살아온 세월의 무늬를 담아 정갈하게 글 한 줄을 엮어내는 이 호젓한 시간 속에 비로소 참다운 평안이 깃듭니다.
세상이 쳐놓은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못난 실패자라 몰아세우며 차가운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다면, 가만히 숨을 고르고 굳은살 박인 내 거친 손등을 살며시 쓸어안아 주었으면 합니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하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비틀거리며 넘어져도 살아온 그 걸음걸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눈물겹도록 어엿하고 참으로 귀합니다. 숨 막히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 부족한 빈틈을 순순히 품어 안는 그 소박한 용기에서부터,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두 발로 당당하게 디디며 살아가는 진짜 내 삶의 새날이 기어이 활짝 열릴 것이라 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주인공 요조가 말하는 '인간 실격'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요?
사회적 통념이나 법적인 자격을 잃었다는 뜻을 넘어, 타인의 위선과 거짓에 순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온전한 주체성을 상실한 채 파멸해 버린 인간 실존의 깊은 무력감을 뜻합니다.
Q. 소설이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한데 현대인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깊은 고독과 인정 불안을 정직하게 비춰주며,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건강한 자아를 회복할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Q.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비현실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서툰 실수와 부족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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