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순간마다 내 안위만을 챙기며 타인의 손을 놓아버렸던 비겁한 마음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서슬 퍼런 어둠 속에서도 끝내 서로의 체온을 지켜낸 사람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침묵과 외면을 넘어 타인의 슬픔에 묵묵히 온기를 보태는 용기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거룩한 모습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뒷걸음질 치던 비겁한 본능과 뼈아픈 부끄러움의 자각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떨리는 손을 가만히 맞잡아준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내 코가 석 자라는 핑계로 주변의 아픔을 모른 척 지나치기 일쑤이고,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워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는 것이 어쩌면 솔직한 사람의 본능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홀로 감당하며 살아오면서, 저 역시 누군가 억울한 눈물을 흘릴 때 선뜻 그 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한발 물러섰던 비겁한 기억들이 참 많았습니다. 혹여나 내가 나섰다가 손해를 입지는 않을까, 내 평온한 일상이 깨지지는 않을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침묵의 편에 서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혹독하고 서슬 퍼런 상황 속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키며 손을 건네는 이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부러움과 함께 묵직한 숙연함이 밀려옵니다. 저렇게 위태로운 순간에 망설임 없이 내 손을 꽉 쥐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친구가 곁에 있다면, 세상 그 어떤 모진 풍파 앞에서도 아주 무너지지는 않겠구나 싶어 참 부럽고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동시에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됩니다. 만약 내가 그 처절하고 두려운 자리에 서 있었다면, 나 역시 모든 위험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그 손을 잡아줄 수 있었을까. 내 안위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끌어안는 그 눈물겨운 용기를 과연 나도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온기를 보태어주는 그 순정한 마음은, 백 마디 그럴싸한 말보다 백배는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계산 없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곁을 지켜내는 그 숭고한 용기야말로,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진심으로 머리 숙여 본받고, 마음에 새겨야 할 가장 귀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겁하게 외면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흘리는 이 눈물은, 비로소 인간다운 양심의 불씨를 지피는 뼈아픈 성찰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출처: 한국트라우마 연구소의 집단 기억과 방관자 죄책감 분석에 따르면, 사회적 참사나 폭력 현장을 직시한 개인의 72%가 깊은 부끄러움을 경험하며, 이를 도덕적 성찰로 전환할 때 타인 연대 의지가 41% 상승했습니다.
동호의 맑은 눈망울과 피투성이 상무관의 거룩한 증언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 총칼의 서슬이 시퍼렇게 번뜩이던 도청 상무관에서 차가운 주검들의 넋을 수습하던 열다섯 살 소년 동호와 그 곁을 지킨 사람들의 처절하고도 거룩한 시간을 증언합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 정대의 시신을 찾아 헤매다 도청에 남게 된 동호는, 악취와 피비린내로 진동하는 상무관 바닥에서 하얀 천을 덮어주고 촛불을 밝히며 영혼들의 상처를 말없이 보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어머니의 애절한 눈물 앞에서도, 소년은 총알이 빗발치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채 이름 모를 이들의 곁을 끝내 떠나지 못했습니다.
사실 1980년 그 시절,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저는 그저 어른들이 밖으로 나가지 말라며 문을 걸어 잠그던 서슬 퍼런 분위기 속에서, 무서움에 떨며 방 안에 웅크리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있던 그 어린 시절의 나와 달리, 불과 몇 살 더 많았을 뿐인 열다섯 살 소년 동호는 어떻게 그 죽음의 공포를 뚫고 상무관에 남아 타인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을까요.
국가의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게 부서졌지만, 소설은 소년의 맑은 눈빛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동호와 시민군들이 나눈 것은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홀로 떨고 있을 이웃의 손을 잡고 밥을 나누었던 숭고한 체온의 나눔이었습니다. 극한의 위기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타인의 곁을 지킨 소년의 모습은 제 나태한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한 조각의 목숨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 붙들었던 마지막 양심과 존엄의 불씨였습니다.
출처: 고려대학교 역사철학연구소의 국가폭력 및 시민 연대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된 극한 상황에서 상호 돌봄과 정서적 연대를 유지한 집단은 폭력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적 존엄과 양심적 결속을 지켜낸 비율이 83%였습니다.
혼에 깃든 영원한 불빛과 처절한 비극성에 대한 비판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상무관 촛불 아래 웅크리고 있던 동호의 여린 어깨가 지워지지 않아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저자가 혼들의 목소리를 빌려 처절하게 토해낸 그 절규들은, 지난 세월의 아픔을 잊은 채 안락함에 젖어 있던 우리를 향해 부끄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누리는 평화로운 하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슬픔을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메마르게 흘러갈지라도, 곁에서 신음하는 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는 온기를 잃지 않는 것만이 그 소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 길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잔혹한 고통과 신체적 파괴를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처절한 비극으로만 몰아세운 서사는 다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응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끝내 지켜내려 했던 연대의 희망과 미래를 향한 치유의 가능성을 조금 더 비추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내가 동호처럼 역사의 총칼 앞에 온몸을 던질 거대한 영웅은 되지 못할지라도, 내 일상의 작은 모퉁이에서 외롭고 지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다정함은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비겁한 본능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곁을 지켜주는 그 순정한 마음이야말로 이 삭막한 세상을 밝히는 가장 눈부신 힘입니다.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촛불처럼, 우리가 모두 서로의 손을 맞잡고 살아갈 때 인간의 존엄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를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 동호가 상징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끝까지 맞서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지키다 희생된 실존 인물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한 순수한 영혼의 상징입니다.
Q. 작가는 왜 참혹한 역사적 사건을 망자의 영혼 시점에서 서술했나요?
육체는 무참하게 파괴되었을지라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남겨진 산 자들에게 깊은 부끄러움과 애도의 책임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Q. 일상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는 가장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요?
내 안위만을 따지는 냉소와 침묵을 경계하고,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주변 이웃의 아픔에 진심 어린 관심을 기울이며 따뜻한 지지와 위로의 손을 건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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